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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돈에 대한 무지를 직시하라 — 주식 시장의 환상

1-3 · 전문기관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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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감독자들이 금을 보는 방법

금에 우호적일 이유가 없는 또 다른 기관이 있다. 세계 은행 시스템의 규칙을 만드는 곳, BIS(국제결제은행)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다. 이 위원회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이 얼마나 안전한 자산을 보유해야 하는지를 규정한 '바젤 3' 기준을 만들었다. 그 기준 안에 금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면, 규제 당국이 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드러난다.

핵심은 숫자 하나다. 위험가중치 0%.

바젤 협약은 은행이 보유한 자산마다 위험 수준을 수치로 매긴다. 기업 대출은 100%, 주식은 300%, 부실 가능성이 있는 자산은 더 높다. 위험가중치가 높을수록 은행은 그만큼 더 많은 자본을 쌓아 두어야 한다. 그런데 실물 금에 매겨진 위험가중치는 0%다. 현금, 그리고 미국 국채와 같은 등급이다. 이 기준은 1988년 바젤 I 때부터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다. 세계 금융 규제의 역사 내내, 실물 금은 단 한 번도 위험자산으로 분류된 적이 없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은행이 금을 보유하면 추가 자본을 쌓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규제 당국의 시각에서 금은 현금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이 규칙을 만든 사람들은 금의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투자자가 아니다. 세계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책임지는 감독자들이다. 그들이 설계한 안전망의 가장 깊은 곳에 금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바젤 3가 도입되면서 이 기조는 더 강화됐다. 바젤 이전까지 은행들은 '페이퍼 골드'—금 ETF나 파생상품—를 실물 금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었다. 바젤 3는 이 둘을 엄격히 구분했다. 파생 형태의 금에는 높은 위험가중치를 매기고, 실물로 보유한 금에만 0%를 유지한 것이다. 규제 당국은 종이 위의 금과 금고 안의 금을 다르게 본다. 서류상 금은 위험하고, 실물 금은 안전하다는 판단이다.

여기에는 논리가 있다. 실물 금은 어느 나라의 신용에도 묶여 있지 않다. 달러는 미국이, 국채는 그 나라 정부가 갚아야 할 부채다. 부도가 나면 가치가 흔들린다. 그러나 금은 누구도 갚을 의무가 없는 자산이다. 상대방이 무너져도 금은 그대로다. 규제 당국이 이것을 0%라는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IMF가 국가 단위의 준비자산 기준을 만들고, BIS가 은행 단위의 자본 기준을 만든다. 두 기관은 독립적이고,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다. 그런데 금에 대한 결론은 같다. 위기 때 가장 먼저 의지할 수 있는 자산의 목록에, 두 기관 모두 금을 올려 두었다. 금을 팔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계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하는 사람들이 내린 판단이다.


한 발 더: HQLA 승격 루머와 그 의미

2025년 초, 금 관련 커뮤니티와 투자 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소식이 있었다. "2025년 7월 1일부터 금이 바젤 3 HQLA(고유동성자산) Level 1으로 공식 승격된다"는 것이었다. 소셜미디어와 투자 뉴스레터에 빠르게 퍼졌고, 일부에서는 이를 근거로 금값이 폭등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사실이 아니었다. LBMA(런던금시장협회)와 세계금협회(WGC)가 직접 나서서 공식 정정했다. "그런 공식 발표는 없었고, 예정된 것도 없다." 바젤 3 최종 규정인 'Endgame' 자체가 지연된 상태였고, 금의 HQLA 지위 변경에 대한 공식 결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루머가 흥미로운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왜 이 소식이 그토록 빠르게 퍼지고 사람들이 믿고 싶어 했는지를 보면, 시장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실제로 실현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충분히 계산할 수 있다.

HQLA Level 1 승격이 실현된다면:

현재 전 세계 은행들이 보유해야 하는 HQLA 규모는 수십조 달러에 달한다. 이 자산군에 금이 공식 편입되는 순간, 은행들은 규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금을 보유할 실질적인 유인을 갖게 된다. 전문가 추산으로는 금이 HQLA 포트폴리오의 510%만 차지해도 온스당 200300달러의 추가 가격 상승 압력이 생긴다.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페이퍼 골드'에서 '실물 금'으로의 전환이다. HQLA로 인정받으려면 실제 금고에 보관된 실물이어야 한다. ETF나 선물 계약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는 실물 금 수요를 끌어올리고, 오랫동안 실물보다 훨씬 많이 거래되어 온 종이 금 시장의 구조를 흔들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 반대 이유도 명확하다. 은행들이 국채 대신 금을 HQLA로 쓸 수 있게 되면, 국채 수요가 줄고 각국 정부의 차입 비용이 올라간다. 규제 당국이 금의 HQLA 승격을 서두르지 않는 데는 이 구조적 이해충돌이 있다. 금은 국채의 경쟁자다.

루머는 틀렸다. 그러나 루머가 가리키는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LBMA와 WGC는 현재도 금의 HQLA 편입을 공식 로비 중이다.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그 결정이 언제 내려지든, 방향은 이미 기울어져 있다.


용어 정리

BIS (국제결제은행,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1930년 설립된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 스위스 바젤에 본부를 둔다. 각국 중앙은행 간 결제와 협력을 담당하며, 국제 금융 규제 기준을 만드는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가 산하에 있다. IMF가 통화·국제수지를 다룬다면, BIS는 은행 건전성과 금융 안정을 담당한다.

바젤 3 (Basel III) 2008년 금융위기 이후 BIS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가 만든 국제 은행 자본·유동성 기준. 2010년 합의, 각국이 국내법으로 순차 도입했다. 은행이 위기 시 스스로 버틸 수 있도록 자본의 질과 양을 강화한 것이 핵심이다.

위험가중치 (Risk Weight) 바젤 협약에서 자산의 위험 수준을 수치로 표현한 것. 0%는 무위험, 100%는 표준 위험, 300% 이상은 고위험 자산이다. 위험가중치가 높을수록 은행은 그 자산에 대해 더 많은 자본을 적립해야 한다. 실물 금의 위험가중치는 현금·국채와 동일한 0%다.

카운터파티 리스크 (Counterparty Risk, 상대방 위험) 거래 상대방이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위험. 채권을 보유하면 발행자가 갚지 못할 위험이 존재하고, 달러를 보유하면 미국의 신용에 노출된다. 실물 금은 갚아야 할 상대방이 없기 때문에 카운터파티 리스크가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