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돈에 대한 무지를 직시하라 — 주식 시장의 환상
1-3 · 전문기관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조회 355
IMF가 금을 분류하는 방식
금에 우호적일 이유가 전혀 없는 기관을 보자. 국제통화기금, IMF다. IMF는 세계 통화 질서를 관리하는 기관이고, 그 질서의 중심에는 달러를 비롯한 명목화폐가 있다. 금은 오히려 그 명목화폐 체제의 경쟁자에 가깝다. 그런 IMF가 금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보면, 금의 위상이 더 정직하게 드러난다.
핵심은 이것이다. IMF는 금을 '준비자산(Reserve Asset)'으로 분류한다. 준비자산이란 한 나라가 위기에 대비해 쌓아 두는 최후의 곳간이다. IMF의 공식 분류 체계인 BPM6(국제수지 매뉴얼 6판)에 따르면, 준비자산은 외환(달러·유로·엔 등), SDR(특별인출권), IMF 포지션, 그리고 금으로 구성된다. 주식도, 부동산도, 회사채도 이 곳간에는 끼지 못한다. 세계 통화 질서를 운영하는 바로 그 기관이, 금을 국가의 비상금과 같은 반열에 올려 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IMF에 가입한 190개 이상의 회원국은 이 기준에 따라 준비자산을 관리한다. 어느 나라의 외환 보유고에 "금: 몇 톤"이라고 적혀 있다면, 그것은 IMF가 승인한 가장 안전한 자산 중 하나로 인정받은 것이다. 개인의 투자 판단이 아니라, 국가 신용의 최후 방어선에 금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IMF 자신도 상당한 양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IMF가 보유한 금은 약 2,814.1톤으로(IMF 공개 자료 기준), 이는 세계 3위 수준의 공식 금 보유량이다. 명목화폐 체제를 관리하는 기관이 정작 자기 곳간에는 금을 쟁여 두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말보다 무거운 행동이다. 입으로는 달러 체제를 운영하면서, 정작 만일을 대비한 자산으로는 금을 쥐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달러나 유로화는 발행국의 신용에 묶여 있다. 미국이 재정 위기에 빠지면 달러 가치가 흔들린다. 유럽이 위기면 유로화가 흔들린다. 그런데 금은 그런 위기로부터 독립적이다. 미국이 무너져도 금 1온스는 1온스다. 그래서 국제기구가 준비자산의 일부로 금을 반드시 포함하는 것이다. 특정 국가의 신용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을 둘러싼 가장 중요한 진실이 숨어 있다. 금은 누구의 부채도 아니라는 점이다. 달러는 미국의 부채이고, 다른 나라의 외화 역시 그 나라의 신용에 묶여 있다. 그러나 금은 어느 나라가 갚아야 할 빚이 아니다. 그래서 한 나라의 신용이 무너져도 금의 가치는 그 나라와 함께 무너지지 않는다. 카운터파티 리스크가 없는 자산, 이것이 금의 본질적 특성이다. IMF가 금을 특별한 칸에 넣어 두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최근 국제 흐름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이 러시아의 외환 보유고 일부를 동결했다. 달러와 유로화로 보유하던 자산이 하루아침에 묶인 것이다. 반면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던 실물 금은 동결하기 어렵다. 이 사건 이후 여러 나라들이 외환 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을 낮추고 금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IMF의 준비자산 분류가 왜 옳은지를 지정학이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금을 팔 이유가 없는 기관이 금을 곳간에 넣어 둔다. 이 한 가지 사실이, 금에 우호적인 백 마디 전망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 다음 장에서는 이런 공식 문서들의 행간을 읽어 내는 기술을 정리하겠다.
출처
- IMF가 금을 준비자산(reserve asset)으로 분류 / IMF 자체 금 보유 | IMF 공개 자료 일반 | —
- IMF BPM6(국제수지 매뉴얼 6판) 준비자산 분류 체계 | IMF 공식 문서 | —
- IMF 금 보유량 약 2,814.1톤 | IMF 공개 자료 | —
- 금은 어느 주체의 부채도 아님(무차입 자산) | 본서 b-2-3·금융 일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