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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중앙은행은 왜 금을 쌓아두는가 — 본질의 이해

2-3 · 금의 5가지 본질적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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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파티 리스크의 부재 — 가장 중요한 속성

지금까지 본 희소성, 내구성, 분할 가능성, 균질성은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금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따로 있다. 카운터파티 리스크의 부재, 곧 거래 상대방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이 한 가지가 위기의 순간 금과 다른 모든 자산을 가른다.

거래 상대방 위험이란 무엇인가. 당신이 가진 자산의 가치가 다른 누군가의 약속에 달려 있을 때 생기는 위험이다. 은행 예금은 은행이 갚겠다는 약속이다. 채권은 발행자가 갚겠다는 약속이고, 주식은 기업이 존속한다는 전제이며, 펀드는 운용사가 지켜 준다는 신뢰다. 이 모든 자산은 평온할 때는 든든해 보이지만, 그 약속의 상대방이 무너지는 순간 함께 무너진다. 당신이 아무리 옳아도, 상대가 부도나면 당신의 자산도 사라진다.

역사가 이 위험을 반복적으로 증명한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직후, 리먼이 발행한 채권을 보유했던 수많은 투자자들의 자산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국의 경우 IMF 외환위기 당시 일부 저축은행이 문을 닫으면서 예금자들이 원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20년 코로나 충격 초기 크레디트 마켓이 얼어붙으면서 기업 채권의 가치가 급락했을 때, 채권 ETF조차 순자산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이례적 상황이 발생했다. 이 모든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흔들리지 않은 것이 실물 금이었다.

금은 다르다. 금은 누구의 약속도 아니다. 그것은 약속이 아니라 물건 그 자체다. 당신의 금고에 든 금 한 덩이는, 어느 은행이 망하든 어느 나라가 부도나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발행한 자가 없으니 부도낼 자도 없고, 지켜 줄 상대가 없으니 무너질 상대도 없다. 세상의 거의 모든 금융 자산이 누군가의 부채인 반면, 금은 누구의 부채도 아닌 거의 유일한 자산이다.

이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금의 여러 보유 형태를 구분해야 한다. 손에 쥔 실물 금과, 금 ETF, 금 통장, 금 선물은 서로 다른 자산이다. 금 ETF는 금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금융 상품이다. 운용사가 실물 금을 보유하고, 당신은 그 운용사와의 계약상 권리를 갖는다. 운용사가 파산하거나 실물 보관에 문제가 생기면 위험이 전이된다. 금 통장은 은행이 금을 대신 보유하겠다는 약속이다. 은행이 문을 닫으면 이 약속의 이행이 불투명해진다. 실물 금만이 이 모든 중간 약속을 건너뛴다.

이 차이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다. 시스템이 잘 돌아갈 때는 종이 약속도 실물도 똑같이 작동한다. 그러나 위기가 닥쳐 약속의 사슬이 끊어지기 시작하면, 그 차이가 생사를 가른다. 우리는 2008년과 2020년에 종이 자산들이 연쇄적으로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때 끝까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은 자산은 실물 금이었다. 앞서 본 중앙은행들이 굳이 실물 금을 자기 영토 안으로 가져오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멀리 맡겨 둔 금조차 결국은 보관처의 약속에 묶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물 금도 완벽하지는 않다. 보관 비용이 발생하고, 분실이나 도난의 위험이 있으며, 즉시 현금화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가짜 금의 위험도 있다. 이 한계들은 인정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지, 실물 금의 핵심 미덕인 카운터파티 리스크 부재를 무력화하지는 않는다. 위험을 관리하면서 이 미덕을 취하는 것이 실물 금 투자의 본질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속성을 금의 심장이라 부른다. 희소성과 내구성이 금을 좋은 자산으로 만든다면, 카운터파티 리스크의 부재는 금을 위기의 자산으로 만든다. 다른 모든 것이 약속 위에 서 있을 때, 홀로 약속 밖에 서 있는 것. 그것이 금이 최후의 보루인 진짜 이유다. 다음 장에서는 이 모든 속성을 인류가 한목소리로 인정해 온 마지막 미덕, 보편적 합의를 보겠다.


출처

  • 거래 상대방 위험의 부재(금은 누구의 부채도 아님) | 본서 b-2-3·금융 일반 | —
  • 2008·2020 종이 자산 연쇄 충격 vs 실물 | 본서 b-5·우리 DB metal_usd_daily | —
  • 중앙은행의 실물 본국 회수 동기 | 본서 2-1 관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