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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AI 시대, 실물 자산이 빛나는 이유

4-1 · 가장 첨단의 기술은 가장 원시적인 물질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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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의 은

금이 칩 속 핵심 접점을 맡는다면, 은은 더 넓은 전선에서 일한다. 은은 인류가 아는 모든 금속 가운데 전기와 열을 가장 잘 통하는 금속이다. 그래서 전기가 흐르고 열이 오가는 곳이면 어디든 은이 끼어든다. 데이터센터는 바로 그런 곳의 집약체다.

은의 전도율을 숫자로 보면 그 우위가 분명하다. 전기 전도율 기준으로 은을 100으로 놓으면, 구리는 약 97, 금은 약 73, 알루미늄은 약 61 수준이다. 은이 가장 잘 통한다. 전도율이 높다는 것은 같은 양의 전기를 보내는 데 열 손실이 적다는 뜻이다. 데이터센터처럼 전력 효율이 곧 비용이고, 열 관리가 곧 안정성인 환경에서 이 차이는 설계에 직접 반영된다.

은의 쓰임을 구체적으로 보자. 데이터센터를 채운 서버 기판의 회로, 칩을 잇는 접점, 전력을 나르는 부품, 열을 식히는 장치—이 모든 곳에 은이 들어간다. 서버 기판의 솔더(납 대신 쓰이는 무연 솔더에도 은이 들어간다), 전력 릴레이 접점, 열 전도성 페이스트, 전도성 잉크까지. 은은 금보다 싸면서도 전도성은 더 뛰어나, 대량으로 쓰기에 알맞다. AI 연산이 늘수록 서버가 늘고, 서버가 늘수록 그 안의 은도 늘어난다. 데이터센터는 은을 먹고 자라는 거대한 기계인 셈이다.

냉각 시스템에서 은의 역할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AI 연산 칩은 엄청난 열을 발생시킨다. 고성능 GPU 하나가 발생시키는 열은 400와트를 넘기도 한다. 이 열을 식히지 못하면 칩은 throttling(성능 제한)을 걸거나 손상된다. 서버와 칩 사이에 바르는 열 전도 페이스트(TIM, Thermal Interface Material) 가운데 고성능 제품에는 은 입자가 포함된다. 열을 가장 빠르게 전달하는 은의 성질이 여기서도 발휘된다. AI 가속기의 성능 경쟁이 격화될수록, 냉각 요구는 더 높아지고 은 기반 TIM 수요도 따라 오른다.

이것이 막연한 추측이 아님은 숫자가 증명한다. 세계은협회(Silver Institute)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은의 산업용 수요는 6억 8,050만 온스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것도 무려 4년 연속의 최고 기록이다. 그 성장의 동력으로 보고서가 직접 지목한 것이 전력망 인프라, 전기차, 태양광, 그리고 인공지능에서 비롯된 소비자 전자제품 수요다. AI가 은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추정이 아니라 집계로 확인된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흐름이 있다. 태양광이다. 태양광 패널은 햇빛을 전기로 바꾸는 과정에서 은을 핵심 재료로 쓴다. 패널 표면에 인쇄되는 전도성 전극(silver paste)이 그것이다. 세계은협회 자료에 따르면 태양광이 은 산업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약 11퍼센트에서 2024년 약 29퍼센트로, 10년 만에 거의 세 배가 되었다. AI 데이터센터를 돌리는 막대한 전력의 상당 부분이 태양광에서 나온다면, 은은 그 전기를 만드는 쪽과 쓰는 쪽 양끝에서 동시에 소비되는 것이다.

한국의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이 흐름이 더 피부에 닿는다. 한국은 반도체 생산 대국이자, AI 전환을 주도하는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 역시 접점과 배선에 귀금속을 쓴다. 이들이 공급하는 HBM(고대역폭 메모리)은 AI 서버의 핵심 부품이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의 확산이 한국 반도체 수요를 키우고, 그 수요가 다시 귀금속 소비를 끌어올리는 연결 고리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데이터센터는 은의 거대한 소비처이고, 그 소비는 해마다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더구나 은은 한번 산업에 쓰이면 워낙 미세하게 흩어져, 금만큼 알뜰히 회수되지 못하고 상당량이 소모되어 사라진다. 쓰는 만큼 줄어드는 금속, 그런데 쓰임은 매년 느는 금속. 이 수요·공급의 구조를 기억해 두라. 다음 절에서는 은과 금이 5G·자율주행·로봇으로 그 쓰임을 더 넓혀 가는 모습을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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