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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AI 시대, 실물 자산이 빛나는 이유

4-1 · 가장 첨단의 기술은 가장 원시적인 물질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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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U 한 장 속의 금

인공지능 시대를 떠받치는 심장은 GPU라 불리는 반도체다. 챗봇이 답하고, 자율주행차가 길을 읽고, 거대한 데이터센터가 돌아가는 그 모든 연산의 바닥에 이 칩이 있다. 그런데 이 첨단의 칩 속에, 가장 오래된 금속인 금이 들어 있다. 이 사실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왜 하필 금인가. 금은 전기를 매우 잘 통하면서도 녹슬지 않는 거의 유일한 금속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안에서는 머리카락보다 가는 선이 수많은 접점을 잇는다. 이 선이 조금이라도 부식되거나 저항이 커지면 연산은 어긋난다. 구리는 싸지만 시간이 지나면 산화한다. 금은 비싸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뢰성이 생명인 핵심 접점과 배선, 도금에 금이 쓰인다. 첨단 기술이 가장 오래된 금속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료공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선택은 필연이다. 금의 전기 전도율은 구리보다 낮지만, 그 대신 산화 저항성과 화학적 안정성이 거의 완벽하다. 반도체 칩의 회로 선폭이 나노미터 단위로 좁아질수록, 단 한 점의 부식도 치명적인 오작동을 낳는다. 와이어 본딩(반도체 다이와 기판을 연결하는 금선), 접점 도금, 고신뢰성 커넥터—이 세 영역에서 금은 대체하기 어렵다. 알루미늄 와이어가 일부 자리를 대신하기도 하지만, 극한의 신뢰성이 요구되는 군사·의료·우주 장비 그리고 AI 가속기의 최상위 등급에서는 금선이 여전히 쓰인다.

한 장의 GPU에 든 금의 양은 많지 않다. 칩 하나에 담긴 금은 그램이 아니라 밀리그램 단위다. 정확한 함유량은 제품과 세대마다 크게 달라 하나의 숫자로 못 박기 어려우니, 여기서는 대략의 감각으로만 받아들이면 된다. 한 장만 보면 사소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세상은 지금 이 칩을 한 장씩 사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센터 하나에 수만 장씩, 그런 데이터센터를 전 세계에 수천 개씩 지어 올리고 있다. 밀리그램이 수만 배, 수억 배로 곱해질 때 그 총량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계산을 통해 규모 감각을 잡아 보자. 대형 AI 데이터센터 한 곳이 GPU 5만 장을 운용한다고 가정한다. 장당 금 함유량을 보수적으로 0.1그램으로 잡으면, 한 데이터센터에만 5킬로그램의 금이 들어간다. 세계적으로 이런 규모의 시설이 수백 곳 이상 건설되는 AI 인프라 사이클에서는, GPU 안의 금만 따져도 수 톤 단위 수요가 누적된다. 여기에 서버 보드, 스위칭 장비, 전력 공급 장치 등 주변 부품까지 합산하면 그 총량은 더 커진다. 단순 추산이니 과신해선 안 되지만, 밀리그램 단위의 작은 성분이 규모의 경제와 만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요가 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또 한 가지를 짚어야 한다. 전자 폐기물에서 금을 회수하는 도시광산(urban mining)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이 방향이 발전할수록 채굴 공급에 대한 의존을 일부 줄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자 폐기물 회수율은 여전히 낮고, 회수된 금속 중 실제로 정제·재사용되는 비율도 제한적이다. 수요의 증가 속도를 회수·재활용이 따라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 간극이 금 시장의 공급 타이트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핵심은 이것이다. 금은 단지 위기에 대비하는 방패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산업의 한복판에서 실제로 소비되는 원자재다. 장신구로서의 금, 안전자산으로서의 금만 생각하던 사람에게는 낯선 그림일 것이다. 그러나 AI가 커질수록, 그것을 떠받치는 칩이 늘어날수록, 그 칩에 들어갈 금에 대한 수요도 함께 자란다. 수요가 자라는 자산은 시간이 그 편이다.

물론 과장은 경계해야 한다. AI 때문에 금값이 당장 몇 배가 된다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칩 하나에 든 금은 적고, 재활용도 이루어진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금이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부품이라는 사실이다. 가치 저장 수단이면서 동시에 첨단 산업의 필수 원료인 자산. 이 이중의 성격이 금을 특별하게 만든다. 다음 절에서는 금의 형제인 은이 데이터센터에서 맡은 더 큰 역할을 보겠다.


출처

  • 금의 높은 전도성·내식성으로 인한 반도체 접점·배선·도금 사용 | 재료공학 일반·업계 일반 | —
  • 와이어 본딩·커넥터 도금·고신뢰 부품에서의 금 사용 | 반도체 제조 일반 | —
  • GPU·반도체 1개당 금 함유량은 제품·세대별로 상이하여 대략치로만 제시(제조 사양 기준) | 업계 일반 | —
  • AI·데이터센터 확장에 따른 칩 수요 누적 효과 | 본서 4-2-3 McKinsey 데이터 연결 | —
  • 도시광산(전자폐기물 금 회수) 현황 및 한계 | 업계 일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