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중앙은행은 왜 금을 쌓아두는가 — 본질의 이해
2-1 ·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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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준은 왜 8,133톤을 그대로 두는가
비서방 국가들이 금을 사 모으는 동안, 정작 달러를 찍어 내는 나라 미국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미국은 공식적으로 약 8,133톤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이고, 2위 국가를 크게 따돌린 규모다. 독일이 약 3,352톤, 이탈리아가 약 2,452톤, 프랑스가 약 2,437톤이다. 미국 혼자 서유럽 주요국을 합친 것과 맞먹는 금을 쥐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달러 체제의 본산인 미국이 이 금을 팔지 않고 그대로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미국은 달러를 무제한으로 찍을 수 있는 나라다. 돈이 필요하면 인쇄하면 된다. 금이 그저 '야만의 유물'이라면, 8,133톤이나 되는 막대한 금을 굳이 곳간에 묵혀 둘 이유가 없다. 팔아서 빚을 갚거나 다른 데 쓰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수십 년째 이 금을 단 한 톤도 의미 있게 줄이지 않는다.
더 흥미로운 점은 역사적 맥락이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달러는 금과 직접 교환이 가능했다. 35달러에 금 1온스를 살 수 있었다. 1971년 닉슨이 금태환을 정지시키면서 그 연결 고리가 끊어졌다. 이후 달러는 금과의 공식적 관계 없이 '신뢰'만으로 운행되는 법정화폐가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미국은 금을 팔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금과 단절했지만, 실제로는 금을 그대로 쥐고 있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이 침묵의 행동이 말하는 바는 크다. 달러를 운영하는 나라조차,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최후의 신뢰 자산으로 금을 남겨 둔다는 것이다. 달러의 힘은 결국 신뢰 위에 서 있고, 그 신뢰가 흔들리는 극단의 순간에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금이라는 사실을, 미국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셈이다. 입으로 무어라 말하든, 곳간의 금은 그대로다.
유럽을 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영국, 스위스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이 금 보유량을 줄였다. 당시 명분은 금이 이자를 낳지 않고 보관 비용만 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금값은 수배로 올랐다. '영국의 금 바닥 매각'은 지금도 최악의 시장 타이밍 결정 사례 중 하나로 회자된다. 그 경험 이후 금 보유를 줄이려는 움직임은 크게 줄었다.
이 금을 둘러싼 음모론도 많다. 포트녹스의 금고가 실은 비어 있다거나, 장부상의 금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이야기다. 그런 주장의 진위는 누구도 확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금이 여전히 한 나라의 신뢰를 떠받치는 궁극의 담보로 여겨진다는 증거다. 아무도 가치 없는 것을 두고 음모론을 만들지는 않는다.
결국 진영을 막론하고 결론은 같다. 금을 사는 나라도, 금을 쥐고 놓지 않는 나라도, 모두 금을 최후의 보루로 대한다. 다음 절에서는 이 국가들의 속내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증거, 중앙은행 대상 설문을 살펴보겠다.
출처
- 미국 8,133t·독일 3,352·이탈리아 2,452·프랑스 2,437t(세계 1위) | 세계금협회(WGC)·IMF IFS 2025.12 | https://www.gold.org/goldhub/data/gold-reserves-by-country
- 달러 발행국이 금을 유지하는 의미 | 본서 1-3-2 관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