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중앙은행은 왜 금을 쌓아두는가 — 본질의 이해
2-4 · 통화 체제 전환의 신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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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S 결제망과 탈달러화
달러 패권의 균열을 그저 지켜보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 틈을 벌리려는 움직임이 있다. BRICS라 불리는 신흥국 연합의 탈달러 시도다.
BRICS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출발해 회원을 넓혀 온 신흥국들의 모임이다. 2023년 정상회의를 통해 아랍에미리트, 이란,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이 추가로 합류하면서, 이 연합은 전 세계 GDP의 30퍼센트를 넘어섰다. 이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왜 우리끼리 거래하면서도 미국의 화폐를 거쳐야 하는가. 두 나라가 물건을 사고팔 때 달러로 결제하면, 그 거래는 미국의 결제망과 미국의 정책에 노출된다. 미국이 마음먹으면 그 거래를 차단할 수도 있다. 2022년 러시아에 대한 SWIFT 배제 조치가 이 두려움을 현실로 만들었다. 달러 결제망에서 잘리는 순간 무역과 금융이 동시에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을 온 세상이 목격했다.
이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탈달러화의 핵심이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 경로로 움직인다. 첫째, 자국 통화 직접 거래다. 중국과 러시아는 위안화-루블 결제 비중을 늘렸고, 인도는 루피로 러시아산 원유를 결제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둘째, 달러를 우회하는 독자적 결제망이다. 중국은 이미 CIPS(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를 운영하고 있으며, BRICS 차원의 독자 메시징 시스템 논의도 이어진다. 셋째, 외환보유고의 재편이다. 달러 보유를 줄이고 금이나 다른 통화로 교체하는 흐름이다. 세계금협회(WGC) 집계로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2022년 이후 매년 1,000톤 이상의 금을 사들이는 중이며, 이는 달러를 금으로 대체하는 흐름의 직접적 결과다.
일부에서는 금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결제 수단을 구상하기도 한다. 실제로 2024년 정상회의에서는 '유닛(The Unit)'으로 불리는 부분 금본위 결제 단위 아이디어가 거론됐지만, 어디까지나 논의 단계의 제안일 뿐 공식 채택이나 출범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 구상들이 얼마나 빨리, 어떤 형태로 실현될지는 불확실하다. 통화 주권을 가진 나라들이 합의에 이르는 일은 더디고 어렵다. 특히 인도와 중국은 각자의 지역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도 같은 연합 안에 있다. 달러를 대체하겠다는 공동의 동기는 있어도, 그 자리에 무엇을 놓을 것인지에 대한 합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단일 BRICS 통화나 금본위 공동결제는 현재로선 실현되지 않은 구상이지, 기정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흐름에서 금이 차지하는 위치가 핵심이다. 서로의 화폐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나라들이 거래의 중립적 기준을 찾을 때, 결국 돌아오는 곳이 금이다. 어느 나라의 부채도 아니고, 어느 정부도 일방적으로 찍어 낼 수 없는 자산. 탈달러를 진지하게 추진할수록 금의 역할이 커지는 구조다. 이것은 수요의 증가라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금이 국가 간 신뢰의 담보물로 다시 부상하는, 금융 질서의 재편이다.
실물 거래 현장에서도 이 흐름은 감지된다. 과거에는 금을 사러 오는 고객의 동기가 단순했다. 결혼 패물, 인플레이션 헤지, 단기 투자. 지금은 다르다. "달러가 망하면 어떡하냐"는 질문을 하는 고객이 늘었다. 그들은 뉴스에서 BRICS를 봤고, SWIFT 배제를 봤고, 환율이 흔들리는 것을 봤다. 이 막연한 불안이 실물 금 수요로 전환되는 속도가 빨라졌다. 앞서 본 중앙은행들의 금 매집이 바로 이 흐름과 맞물려 있고, 개인의 실물 수요도 같은 방향에서 자라고 있다.
2장을 정리하자. 중앙은행은 사상 최대로 금을 사들이고, 기관들은 금을 구조적 강세로 분류하며, 금이라는 물질 자체는 대체 불가능한 속성을 갖추었고, 그 배경에는 달러 질서의 균열이 깔려 있다. 이 네 겹의 증거가 한 방향을 가리킨다. 다음 장에서는 이 거대한 흐름의 두 얼굴, 즉 밝은 본질과 그 이면의 그림자를 먼저 해부하겠다. 그런 뒤에 시선을 다시 개인에게로 돌려, 이 흐름 속에서 당신이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로 들어간다.
출처
- BRICS 탈달러화 동기(달러 결제망 의존 탈피)·자국통화 무역·독자 결제망 모색 | 공개 보도 일반 | —
- 2023년 BRICS 확대(UAE·이란·이집트·에티오피아 등 신규 가입) | 공개 보도 | 2023
- 2022년 러시아 SWIFT 배제 | 공개 보도 | 2022
- 중앙은행 연 1,000톤+ 금 매집 | World Gold Council | 2022~
- 탈달러 흐름에서 금의 중립적 기준 역할 | 본서 2-1·2-3-4 | —
- BRICS 부분 금본위 결제단위 '유닛(The Unit)'은 2024 카잔 정상회의에서 논의 단계 안건으로 거론(공식 출범·채택 아님) | OMFIF·공개 보도 (https://www.omfif.org/2024/12/gold-backed-digital-currency-could-be-a-game-changer-for-brics/) | 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