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AI 시대, 실물 자산이 빛나는 이유
4-3 · 디지털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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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끊기는 순간 0이 되는 자산
지금까지 우리는 AI가 귀금속을 얼마나 빨아들이는지를 보았다. 이제 그 디지털 문명의 다른 얼굴을 보아야 한다. 그 화려한 세계 전체가, 실은 단 하나의 조건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는 사실이다. 전기다. 전기가 끊기는 순간, 디지털로 존재하는 거의 모든 자산은 0이 된다.
당신의 재산을 떠올려 보라. 은행 예금은 어디에 있는가. 종이 위가 아니라 은행 전산망의 숫자로 있다. 주식과 펀드는 어디에 있는가. 증권사 서버의 기록으로 있다. 간편결제의 잔액, 포인트, 각종 디지털 자산—모두 전기로 돌아가는 시스템 속 숫자다. 이 숫자들은 전원이 들어와 있고, 통신망이 살아 있고, 그 기록을 관리하는 기관이 멀쩡할 때만 '돈'으로 작동한다.
역사는 이 취약성이 이론이 아님을 반복해서 보여 줬다. 2003년 미국 북동부 대정전 때 뉴욕과 캐나다 일부 도시에서 수천만 명이 전기 없이 이틀을 보냈다. ATM은 멈췄고, 카드 단말기는 작동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현금이 있어도 없어도 결국 물물교환에 의지했다. 2021년 텍사스 대정전 때는 영하의 날씨 속에서 전기 시스템이 붕괴되며 수백만 가구가 며칠간 암흑 속에 갇혔다. 이 기간 동안 전자 지불 수단 대부분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가 인근 지역 인터넷과 카드 결제를 마비시켰다. 개인 소비자부터 소상공인까지 전산망 의존이 얼마나 깊은지를 실감한 사례였다.
평소에는 이 조건들이 너무 당연해서 보이지 않는다. 전기는 늘 들어오고, 인터넷은 늘 연결되어 있으니, 우리는 그 위의 숫자가 곧 실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조건은 조건일 뿐이다. 대규모 정전, 통신망 마비, 금융 전산 장애, 사이버 공격. 이 중 무엇 하나라도 닥치면, 그 순간 화면 속 숫자에 손댈 방법이 사라진다. 잔액이 있어도 꺼낼 수 없는 돈은, 그 순간만큼은 없는 돈과 같다.
사이버 공격은 현실적인 위협으로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국가 지원 해킹 그룹들이 금융 시스템과 에너지 인프라를 표적으로 삼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021년 미국 식민지 파이프라인(Colonial Pipeline) 해킹은 며칠 만에 미국 동부 해안의 연료 공급을 마비시켰다. 금융 인프라에 유사한 공격이 가해지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디지털 자산에 대한 의존이 깊어질수록, 그 의존을 무기로 삼으려는 세력의 공격력도 함께 커진다.
여기서 금과 은이 가진 전혀 다른 성질이 드러난다. 한 덩이의 금은 전기가 필요 없다. 통신망이 없어도, 서버가 멈춰도, 어떤 기관이 무너져도, 그것은 여전히 당신 손안에서 금이다. 그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의 전산 기록을 조회할 필요가 없다. 무게와 순도, 그 물리적 실체 자체가 가치다. 인류가 수천 년간 금을 신뢰해 온 이유의 밑바닥에 바로 이 성질이 있다. 금은 어떤 시스템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한국의 맥락에서 생각하면 이 논점이 더 무게를 갖는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디지털화를 이룬 나라 중 하나다. 현금 없는 결제 비율이 극히 높고, 예금에서 투자 상품까지 거의 모든 자산 거래가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편리함의 극단에 있다는 것은, 동시에 의존의 극단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구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일상이지만, 그 의존성의 무게를 인식하는 것이 균형 잡힌 자산 관리의 출발점이다.
오해하지 말라. 디지털 시스템이 곧 무너진다는 종말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은 드물고, 시스템은 대체로 잘 작동한다. 핵심은 확률이 아니라 구조다. 당신의 자산이 '특정 시스템이 작동해야만 가치를 갖는' 구조 위에 100퍼센트 올라가 있다면, 그것은 그 시스템의 운명과 한 몸이라는 뜻이다. 그 의존에서 단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 있는 자산을 일부 갖는 것, 그것이 분산의 본질이다. 다음 절에서는 이 시스템 의존성이 치르게 하는 진짜 비용을 따져 보겠다.
출처
- 디지털·금융 자산의 전력·통신·전산 시스템 의존 구조 | 일반 상식·본서 비즈니스 로직 | —
- 2003년 미국 북동부 대정전, 2021년 텍사스 대정전 사례 | 역사적 사실 | —
-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통신 마비 사례 | 국내 사례 | —
- 2021년 콜로니얼 파이프라인 해킹 사례 | 역사적 사실 | —
- 실물 금·은의 무(無)시스템 의존성(물리적 실체가 곧 가치) | 본서 b-2-3·7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