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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AI 시대, 실물 자산이 빛나는 이유

4-3 · 디지털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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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 의존성의 진짜 비용

앞 절에서 디지털 자산이 시스템 위에 서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의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따른다. 평소에는 청구서가 날아오지 않아 공짜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매 순간 우리가 치르고 있는 비용이다. 인프라 의존성의 진짜 가격을 따져 보자.

첫 번째 비용은 통제권의 양도다. 당신의 돈이 어떤 시스템 안의 숫자로 존재하는 한, 그 돈에 대한 최종 통제권은 당신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자에게 있다. 은행이 계좌를 동결하면, 거래소가 출금을 막으면, 국가가 자산을 묶으면, 당신은 화면 속 자기 돈을 바라볼 수만 있다. 우리는 앞서 1933년 미국이 명령 한 줄로 금을 거둬들인 역사를 보았다. 디지털 자산은 그보다 훨씬 쉽게, 버튼 하나로 묶인다. 통제권을 남에게 맡긴 대가는 이렇게 청구된다.

이 통제권 양도가 추상적으로 느껴진다면, 보다 최근의 사례를 보자. 2022년 캐나다에서 트럭 운전사들의 시위(Freedom Convoy)가 벌어졌을 때, 캐나다 정부는 시위 참가자들의 은행 계좌를 법원 명령 없이 동결할 수 있는 긴급조치를 발동했다. 대상이 된 일부 시민은 자신의 예금 계좌가 통보 없이 접근 불가 상태가 되는 경험을 했다. 이것이 특수한 상황이라 해도, 평소 자명해 보이던 계좌 접근권이 제도적 결정 하나로 중단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통제권 양도의 실상을 보여 준다.

두 번째 비용은 보이지 않는 취약성의 누적이다. 시스템이 정교하고 편리해질수록, 그것이 의존하는 토대는 더 복잡하고 더 깨지기 쉬워진다. 전력, 통신, 반도체, 소프트웨어, 그리고 그 모두를 잇는 무수한 연결. 이 사슬 가운데 어느 한 고리만 끊겨도 전체가 멈춘다. 편리함이 커질수록 사슬은 길어지고, 사슬이 길어질수록 끊길 지점은 많아진다. 우리는 이 취약성 위에서 편리함을 누리며, 그 청구서가 도착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공학에는 '단일 장애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이라는 개념이 있다. 시스템 전체가 특정 한 곳의 고장에 의존하여 멈추는 지점이다. 현대 금융 인프라는 이 단일 장애 지점을 제거하기 위해 이중화, 삼중화 구조를 쓴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한 이중화도 동시적 광범위 장애, 지정학적 충격, 또는 설계 결함 앞에서는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 2012년 나이트 캐피털의 알고리즘 오류 하나가 불과 45분 만에 4억 4,000만 달러를 날렸다. 2010년 플래시 크래시 때는 미국 증시 전체가 수십 분 만에 급락했다가 되돌아왔다. 복잡성이 높아질수록 오류의 전파 속도도 빨라진다.

세 번째 비용은 가장 교묘하다. 의존이 깊어질수록,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는다는 것이다. 모든 자산이 디지털로만 존재하는 데 너무 익숙해지면, 그 바깥의 대안을 상상하는 능력조차 무뎌진다. 실물을 손에 쥔다는 감각, 시스템 없이도 가치를 지닌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개념이 낯설어진다. 가장 비싼 비용은 돈이 아니라, 다른 선택지를 떠올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무뎌짐은 재앙이 닥쳤을 때 대응 속도를 늦추고, 충격을 크게 만든다.

네 번째 비용도 있다. 시스템 의존성은 협상력을 잃게 한다. 특정 플랫폼, 특정 금융 기관, 특정 네트워크에 자산이 완전히 묶여 있을 때, 그 시스템의 수수료 인상, 약관 변경, 서비스 중단에 저항할 수단이 없다. 대안이 없으면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산의 일부를 그 시스템 바깥에 두는 것은, 협상 테이블에서 한 발 물러설 여지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비용을 어떻게 줄이는가. 답은 의존을 0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시스템은 편리하고, 일상의 대부분에서 그것을 쓰는 편이 합리적이다. 핵심은 전부를 거기에 걸지 않는 것이다. 자산의 일부를, 어떤 시스템에도 기대지 않는 형태로 따로 떼어 두는 것. 그 한 조각이 있을 때, 시스템에 치르는 비용은 견딜 만한 것이 된다. 다음 절에서는 이 발상을 한 단계 더 밀고 들어가, '비대칭적 안전성'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해 보겠다.


출처

  • 디지털 자산의 통제권 양도·동결 가능성 | 본서 6-6-1(행정명령 6102호)·비즈니스 로직 | —
  • 2022년 캐나다 Freedom Convoy 은행 계좌 동결 사례 | 역사적 사실 | —
  • 단일 장애 지점(SPOF) 개념 및 복잡 시스템의 오류 전파 | 공학 일반 | —
  • 2012년 나이트 캐피털 알고리즘 오류, 2010년 플래시 크래시 | 역사적 사실 | —
  • 복잡한 인프라 사슬의 취약성 누적 | 일반 상식·본서 4-3-1 | —
  • 분산(전부를 한 시스템에 걸지 않기)의 원칙 | 본서 6-6-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