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너스 챕터: 투자 시나리오 — 보수적 관점의 두 갈래 길
b-1 · 시나리오 A — 점진적 통화 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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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별 10년 예상 흐름
이제 이 조용한 10년 동안 네 가지 자산이 각각 어디로 가는지 보겠다. 현금, 주식, 부동산, 그리고 금이다. 나는 여기서 금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보수적 가정만 쓴다는 약속대로, 금은 명목 연 7에서 8퍼센트의 밋밋한 상승만 한다고 본다. 각 자산의 성격과 10년의 예상 흐름을 차례대로 들여다본다.
현금: 숫자는 살아 있으나 구매력은 죽는다
먼저 현금이다. 현금은 숫자로는 그대로다. 1억은 10년 뒤에도 1억이다. 그러나 그 1억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줄어든다. 물가가 매년 2.5퍼센트씩만 올라도 10년이면 구매력의 약 22퍼센트가 사라진다. 계산식은 간단하다. 1 ÷ (1.025)^10 ≈ 0.78이다. 즉 지금의 1억 원짜리 구매력이 10년 뒤에는 약 7,800만 원어치만 남는다는 뜻이다. 3퍼센트면 약 1 ÷ (1.03)^10 ≈ 0.74이므로 4분의 1이 넘게 녹는다.
이자를 받으면 어떤가. 2024년 기준 국내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연 34퍼센트 수준이다. 이자 소득세(15.4%)를 제하면 실수령 금리는 약 2.53.4퍼센트다. 여기서 물가 상승률을 빼면 실질 수익률은 0에 가깝거나 마이너스다. 예금 이자를 받아도 화폐 부식을 상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통장 잔고를 보며 안심하는 사이, 부는 조용히 증발한다. 현금은 위험이 없는 자산이 아니라, 가장 천천히 확실하게 지는 자산이다.
주식: 성장의 자산이지 방어의 자산이 아니다
주식은 다르다. 길게 보면 우상향할 힘이 있고, 기업의 성장을 나눠 갖는 자산이다. 나는 주식을 부정하지 않는다. 과거 데이터를 현재에 대입하는 것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전제하고, 미국 S&P500은 1970년대 이후 장기 연평균 수익률이 약 10퍼센트(명목, 배당 포함)에 달했다. 성장의 힘은 실재한다.
다만 주식은 화폐 부식의 방패와는 역할이 다르다. 변동성이 크고 개별 기업의 흥망에 묶인다. 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가장 깊이 내려가는 쪽이기도 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코스피는 고점 대비 약 55퍼센트 하락했다. 2020년 코로나 충격 때는 약 35퍼센트 단기 하락했다. 성장을 사는 자산이지 방어를 사는 자산이 아니다. 포트폴리오에서 주식과 금은 역할이 다르며,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할 수 없다.
부동산: 통째로 묶이는 방패
부동산은 한국 자산가에게 가장 익숙한 그릇이다. 인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따라가는 힘도 있다. 실제로 서울 아파트 가격은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 이상의 명목 수익을 보여 왔다. 이 부분은 인정한다.
그러나 약점이 분명하다. 첫째, 대개 빚을 얹어 사기에 금리에 취약하다. 2022년 금리 인상 사이클에서 부동산 시장이 충격을 받은 것은 이 구조적 취약성 때문이다. 둘째, 정책 한 줄에 가치가 출렁인다. 세금·대출 규제·임대 규제 등 정부 정책이 부동산 가치에 직결된다. 셋째, 급할 때 일부만 떼어 팔 수 없다. 현금이 필요할 때 방 한 칸만 팔 수 없다. 통째로 묶이는 자산이다. 환금성이 낮다는 것은 위기 대응 능력이 낮다는 뜻이기도 하다.
금: 이자 없이 녹지 않는다
마지막이 금이다. 금은 이자를 주지 않는다. 배당도 월세도 없다. 이것이 금의 유일하고 분명한 약점이다. 금을 쥔 사람은 그것이 오르기를 기다릴 뿐, 중간에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이 '현금 흐름 없음'이 주식이나 부동산에 비해 단기 관점에서 금을 매력 없게 보이게 한다.
그러나 금은 화폐 부식에 면역이다. 7에서 8퍼센트의 꾸준한 상승은, 복리로 쌓이면 10년 뒤 원금의 약 두 배가 된다. 7퍼센트면 약 1.97배, 8퍼센트면 약 2.16배다. 이것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녹지 않는다. 현금이 22~26퍼센트를 잃는 동안, 금은 2배가 된다. 이 대비가 화폐 부식 환경에서 금의 존재 이유다.
원화 기준으로 환율 변수까지 더하면 효과는 달라질 수 있다. 원화 약세 구간에서는 달러 기준 수익에 환율 수익이 더해진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 변수를 분할 매수로 평탄화한다는 원칙은 b-0-3에서 이미 다뤘다.
네 자산의 성격 비교
| 자산 | 부식 면역 | 현금흐름 | 환금성 | 변동성 |
|---|---|---|---|---|
| 현금 | 없음 | 이자(낮음) | 매우 높음 | 매우 낮음 |
| 주식 | 부분 | 배당 | 높음 | 높음 |
| 부동산 | 부분 | 임대료 | 낮음 | 중간 |
| 금 | 높음 | 없음 | 높음 | 중간 |
표가 말하는 바는 단순하다. 어느 자산도 모든 칸에서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화폐가 녹는 시대에 '부식 면역' 칸이 비어 있는 포트폴리오는 한쪽 다리가 없는 의자다. 금은 바로 그 빈 칸을 채우는 자산이다. 금은 1등을 하는 자산이 아니다. 포트폴리오가 무너지지 않도록 빈 자리를 채우는 자산이다. 그 역할을 이해하는 사람이 올바른 비중을 정하고, 올바른 기대를 갖고, 끝까지 쥔다.
출처
- 금 명목 CAGR 7~8% 가정 / 복리 10년 배수(7%≈1.97배, 8%≈2.16배, 순수 산식) | 우리 DB
metal_usd_daily파생 | — - 현금 구매력 잠식(물가 2.5% 10년 ≈ 22%, 3% ≈ 26%, 산식 1/(1+i)^10) | 가정 물가율·일반 산식 | —
- 국내 정기예금 금리 연 3~4%(2024년 기준, 이자소득세 15.4% 제외) | 한국은행 금융통계 | —
- 코스피 2008년 고점 대비 약 55% 하락 | 한국거래소(KRX) 데이터 | —
- S&P500 장기 연평균 수익률 약 10%(1970~2024, 명목·배당포함) | 학술 일반 / 시장 데이터 | —
- 한국 주식·부동산 장기 수익률은 구체 수치가 아니라 자산의 성격과 방향만 서술 | 방향성 서술 | —
- 물가 연 2.5~3%는 계산을 위한 가정치이며, 원화 금시세 환산은 예시로만 제시 | 가정치·예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