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너스 챕터: 투자 시나리오 — 보수적 관점의 두 갈래 길
b-2 · 시나리오 B — 구조적 통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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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별 위기 국면 흐름
변곡점이 닥치면 자산들은 평시와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한 박자가 아니라 두 박자로 온다. 이 두 단계를 구분하지 못하면, 정작 위기가 왔을 때 가장 중요한 순간에 엉뚱한 판단을 하게 된다.
1단계: 공포와 현금화
첫 번째 단계는 공포다. 위기의 초입에는 모두가 한 가지를 원한다. 현금이다. 빚을 갚아야 하고, 마진콜을 막아야 하고, 일단 손에 돈을 쥐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진 것을 닥치는 대로 판다. 이때는 거의 모든 자산이 함께 무너진다. 놀랍게도 금조차 이 단계에서는 잠시 같이 떨어질 수 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때 국제 금값은 온스당 1천 달러 부근에서 한때 7백 달러대 아래까지 밀렸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 이후 수 주 만에 금값은 약 30퍼센트 가까이 떨어졌다. 위기가 터졌는데 금이 떨어지는, 언뜻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 바로 이 첫 단계에서 벌어진다.
이 국면에서 자산별 낙폭은 대략 이렇게 나타났다. 미국 S&P 500은 2007년 10월 고점 대비 2009년 3월 저점까지 약 57퍼센트 하락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지수는 2007~2009년 사이 약 40퍼센트 이상 하락했다. 반면 미국 국채 수익률은 안전자산 선호로 급락(가격은 급등)했고, 달러는 강세를 보였다. 현금이 왕인 국면이었다.
2단계: 재평가와 통화 살포
두 번째 단계는 재평가다. 공포가 한 차례 지나가면 각국 중앙은행이 움직인다. 무너지는 시스템을 떠받치기 위해 돈을 푼다. 엄청난 양의 통화가 새로 찍혀 나온다. 그 순간 화폐의 희석이 가속되고, 금과 은은 본령을 드러낸다.
2008년에 잠시 7백 달러대로 밀렸던 금은 연준의 QE가 본격화되면서 강하게 회복했다. 2009년 초 900달러대로 돌아온 뒤 2011년 9월에는 1,921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저점 대비 약 2.5배 오른 것이다. 첫 단계의 하락을 견딘 자만이 두 번째 단계의 보상을 받는다. 2020년 팬데믹 충격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금값은 2020년 3월 급락 이후 불과 5개월 만에 온스당 2,000달러를 처음 돌파했다.
원화 기준으로 보면 이 움직임은 더 극적이다. 위기 때는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 약세)하기 때문이다. 2008~2009년 원·달러 환율은 1,000원대 초반에서 한때 1,500원대 초반까지 올랐다. 달러 표시 금값이 하락하더라도 원화로 환산하면 가격이 유지되거나 상승하는 효과가 생긴다. 국내 원화 자산을 보유한 투자자에게 금은 이 이중 보호막으로 작동한다.
자산별 두 단계 비교
| 자산 | 1단계(공포) | 2단계(재평가) |
|---|---|---|
| 현금·달러 | 왕(모두가 원함) | 희석(통화 살포) |
| 주식 | 급락(50% 이상 가능) | 살아남은 종목 회복 |
| 부동산 | 거래 멈춤·가격 하락 | 느린 회복, 지역 차별 |
| 채권(우량) | 안전자산 선호 수혜 | 인플레이션에 실질 손실 |
| 금(실물) | 일시 하락 가능 | 본격 재평가 |
| 금(종이) | 일시 하락 가능 | 실물 대비 괴리 위험 |
이 표에서 가장 주목할 행은 금의 두 열이다. 종이금과 실물금은 첫 단계에서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번째 단계에서 운명이 갈릴 수 있다.
현금은 첫 단계의 왕이지만 두 번째 단계의 패자다. 가장 먼저 달려가는 대피소이면서, 통화 살포로 가장 빨리 잠기는 대피소다. 주식은 첫 단계에 깊이 빠지고, 그 와중에 일부 기업은 아예 사라진다. 회복은 살아남은 종목에만 온다. 부동산은 더 가혹하다. 신용이 얼어붙으면 사겠다는 사람이 사라져, 급히 팔려 해도 팔리지 않는다. 가격표는 있지만 거래가 멈춘다. 2008년 미국 일부 지역에서 부동산 가격은 고점 대비 4050퍼센트 하락했고, 회복에 710년이 걸렸다.
두 단계를 견디는 자세
금과 은은 다르다. 첫 단계에 잠시 흔들릴 수 있어도, 그것은 누군가의 부도나 파산 때문이 아니다. 실물은 거래 상대방이 무너져도 사라지지 않는다. 종이 자산이 약속의 사슬로 엮여 함께 무너질 때, 실물은 그 사슬 밖에 있다. 그래서 위기의 두 번째 단계에서 끝까지 서 있는 것은 실물을 쥔 사람이다.
여기서 핵심 행동 원칙이 도출된다. 첫 단계를 버티려면 빚이 없어야 한다. 빚이 있으면 마진콜과 강제 청산이 첫 단계에서 당신을 내보낸다. 두 번째 단계를 누리려면 실물을 미리 쥐고 있어야 한다.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될 때 실물을 구하려면 이미 늦었고, 웃돈을 물어야 한다. 두 박자의 구조를 미리 아는 것, 그리고 그 구조에 맞게 포지션을 미리 갖춰 두는 것. 왜 그런지, 다음 장에서 더 깊이 들여다보겠다.
출처
- 2008년 금 고점 대비 약 30% 하락(고점 ~$1,023 → 저점 ~$692, 리먼 파산 후 유동성 위기) | Gainesville Coins·GoldRepublic | https://www.gainesvillecoins.com/blog/gold-price-2008-what-we-can-learn
- S&P 500 2007.10 고점 → 2009.3 저점 약 -57%(정확히 -56.8%, 전후 최대 낙폭) | Wikipedia(2007–2009 bear market) | https://en.wikipedia.org/wiki/United_States_bear_market_of_2007%E2%80%932009
- 2011.9 금 사상 최고가 $1,921 | World Gold Council·SD Bullion | https://www.gold.org/news-and-events/press-releases/record-investment-demand-boosts-global-gold-demand-all-time-high
- 2020.8.4 금 온스당 $2,000 최초 돌파(3월 급락 후 약 5개월) | Forbes | https://www.forbes.com/sites/isabeltogoh/2020/08/05/heres-why-gold-has-topped-2000-for-the-first-time/
- 2008~2009 원·달러 환율 1,000원대 → 1,500원대 급등 | 서울경제 | https://www.sedaily.com/article/200148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