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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챕터: 투자 시나리오 — 보수적 관점의 두 갈래 길

b-2 · 시나리오 B — 구조적 통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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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보유자만 살아남는 이유

앞 장에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자. 전쟁이 터지고 위기가 닥쳤는데 왜 금값이 잠시 떨어지는가. 많은 사람이 '전쟁이 나면 금이 즉시 폭등한다'고 믿지만, 현실의 첫 박자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해하는 순간, 왜 실물을 쥔 사람만 끝까지 살아남는지가 드러난다.

종이금과 실물금의 차이

위기의 첫 단계에서 먼저 출렁이는 것은 금 자체가 아니라 '종이로 된 금'이다. 선물과 펀드 같은 금융 상품들은 빚과 약속으로 엮여 있다. 위기가 오면 이 약속들이 한꺼번에 청산되면서 종이금의 가격이 출렁이고, 그 충격이 금 시세 화면에 일시적인 하락으로 찍힌다. 금이라는 물건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금을 둘러싼 약속의 사슬이 흔들린 것이다.

COMEX(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 선물의 미결제 약정은 실제 인도 가능한 실물 금의 규모를 크게 웃돈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정확한 배율은 시점에 따라 다르고 공식 통계로 확정하기 어렵지만, 종이 계약이 실물을 크게 앞서는 구조적 불균형이라는 관찰은 반복된다. 이 구조는 평시에는 문제가 없다. 모든 계약자가 동시에 실물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동시에 실물을 원하는 위기 국면에서 이 구조는 최대 취약점이 된다.

거래 상대방 위험의 본질

여기서 모든 자산을 가르는 단 하나의 기준이 보인다. 거래 상대방 위험이다.

예금은 은행의 약속이다. 은행이 건재해야 내 돈이 내 돈이다. 한국에서는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금융기관당 1억 원까지 보호되지만, 그 이상은 보장이 없다. 2023년 미국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을 때 FDIC 보호 한도(25만 달러) 이상의 예금자들은 수일간 자금 접근이 막혔다.

채권은 발행자의 약속이다. 발행자가 지급 불능 상태가 되면 약속은 종이 조각이 된다. 2001년 아르헨티나 국가 부도 때 국채 보유자들은 수십 퍼센트의 원금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주식은 기업의 존속을 건 약속이고, 선물과 펀드는 운용사와 거래소의 약속이다. 이 약속들은 평시에는 든든하지만, 시스템이 무너지는 순간 그 상대방과 함께 무너진다. 종이 자산의 가치는 언제나 '누가 그것을 지켜 주는가'에 달려 있다.

실물의 본질적 우위

실물 금과 은은 다르다. 그것은 약속이 아니라 물건 그 자체다. 발행한 자가 없으니 부도낼 자도 없고, 지켜 줄 상대방이 없으니 무너질 상대방도 없다. 당신의 손에, 당신의 금고에 있는 한 그것은 누구의 파산과도 무관하게 그대로 존재한다. 시스템이 흔들릴수록 이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역사는 이것을 반복해서 증명했다. 19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는 과정에서, 금붙이를 쥔 시민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버텼다. 2010년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가치 붕괴 때도, 실물 금을 쥔 사람과 현지 통화로 저축한 사람의 운명은 달랐다. 이 사례들을 한국에 직접 대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통화 신뢰가 급격히 무너지는 국면에서 실물 보유자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구조는 반복되었다.

위기 때 벌어지는 종이금과 실물금의 간격

그래서 위기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종종 종이금과 실물금의 가격이 벌어진다. 모두가 진짜 물건을 원하지만 실물은 한정되어 있어, 손에 쥘 수 있는 금에는 웃돈이 붙는다. 그 괴리 폭이 얼마나 벌어지는지는 시기와 시장에 따라 크게 다르므로 특정 수치를 단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평소에는 거의 같던 두 가격이 갈라지는 그 순간이야말로, 실물을 미리 쥐고 있던 사람과 종이만 들고 있던 사람의 운명이 갈리는 지점이다.

2020년 팬데믹 초기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실물 골드바와 코인의 딜러 프리미엄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사례가 보고됐다. 일부 시장에서 골드바의 소매 프리미엄이 평시 수준을 크게 웃돌았다는 보고가 나왔다. 정확한 수치는 딜러별·국가별로 상이하지만, 위기가 오면 종이 가격이 무엇을 가리키든 실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방향은 분명하다.

검수 이력이 이 논의에 들어오는 이유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줄곧 실물을, 그리고 그 실물의 진위를 확인하는 검수 이력을 강조해 온 이유다. 평온한 시절에는 종이든 실물이든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실물을 산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도 아니다. 실물 시장에는 위조품과 불순물 혼입이라는 위험이 존재한다. 특히 위기 국면에서 프리미엄이 붙고 수요가 폭증하면, 위조품 유통도 함께 증가한다는 것이 현장에서 내가 목격한 현실이다.

검수 이력이 쌓인 실물은 단순한 금 덩어리가 아니다. 그것은 신뢰가 붙은 실물이다. 어느 시점, 어느 기관이 이 금의 순도를 확인했는지를 기록으로 남긴 자산이다. 변곡점이라는 가정이 현실이 되는 국면에서, 신뢰가 없는 실물과 검수 이력이 있는 실물은 다시 한번 다른 운명을 탄다.

그 질문이 왔을 때 당신이 어느 편에 서 있을지는, 위기가 닥치기 전 오늘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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