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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화폐를 부식시키지만 금을 부식시키지 않는다

두 번째 작별의 말은 시간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을 관통한 하나의 진실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다. 시간은 화폐를 부식시키지만, 금을 부식시키지 않는다.

화폐와 시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라. 종이돈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를 잃는다. 이것은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기본 성질이다. 우리는 7장에서 보았다. 1971년 화폐가 금이라는 닻을 끊은 뒤, 같은 금 1온스를 사는 데 드는 돈은 끝없이 불어났다. 1971년 금 1온스는 약 35달러였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같은 금 1온스를 사려면 2,000달러가 넘는 돈이 필요하다. 금이 60배가 된 것이 아니다. 달러의 구매력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화폐의 가치가 그만큼 부식된 것이다.

한국 원화도 마찬가지다. 1980년 국내 금값은 돈(3.75g) 당 몇만 원 수준이었다. 2024년 기준 같은 무게의 금을 사려면 30~40만 원이 필요하다. 원화 기준으로도 금은 수십 배 올랐지만, 이것은 금 자체의 내재 가치가 폭발적으로 커진 것이 아니다. 원화의 구매력이 그만큼 줄었다는 신호다. 장롱에 넣어 둔 현금은 가만히 있어도 매년 조금씩 녹아내린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구매력을 잃는다. 시간은 화폐의 적이다.

인플레이션의 힘을 숫자로 실감해 보자. 연 3퍼센트의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20년 뒤 1억 원의 현금은 실질 구매력이 약 5,500만 원으로 줄어든다. 절반 가까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이것은 극단적 시나리오가 아니다.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역사적 평균을 감안하면 충분히 현실적인 숫자다. 구매력의 부식은 폭탄처럼 한 번에 터지지 않는다. 매년 조금씩,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당신의 현금을 갉아먹는다.

금은 다르다. 금은 화학적으로도 부식되지 않는 거의 유일한 금속이다. 수천 년 전 무덤에서 나온 금붙이가 오늘도 빛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물리적 성질은 그대로 경제적 성질이기도 하다. 금은 시간이 흘러도 가치를 잃지 않는다. 문명이 바뀌고 화폐가 교체되고 제국이 무너지는 긴 세월을 가로질러, 금은 늘 금이었다. 기원전 로마 시대에 좋은 토가(toga) 한 벌을 살 수 있었던 금의 양은, 지금도 같은 수준의 옷 한 벌을 살 수 있는 양과 비슷하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2,000년이 지나도 금의 구매력은 유지됐다. 시간은 금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금의 가치를 증명하는 증인이다.

이 대비가 자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 시간이 적인 자산만 가진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해진다. 빨리 쓰거나 빨리 굴려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반면 시간이 편인 자산을 가진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든든해진다. 그저 쥐고 있으면 시간이 그의 편에서 일한다. 9장에서 말한 '잠들 수 있는 시간', '10년 단위의 사고', '다음 세대를 보는 시야'는 모두 시간을 적이 아니라 편으로 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의 편을 드는 자산과 시간의 적이 되는 자산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명확해진다.

자산 유형시간의 역할장기 구매력
법정화폐(현금)적 — 인플레이션으로 부식지속 하락
실물 금편 — 구매력 보존 닻장기 유지
주식(우량 기업)조건부 편 — 기업 성장 전제변동적
채권혼재 — 금리·인플레이션에 취약인플레에 약

물론 금만으로 살 수는 없다. 우리는 화폐를 쓰며 살아가고, 화폐는 일상에 꼭 필요하다. 핵심은 전부를 시간이 부식시키는 자산에만 두지 않는 것이다. 자산의 한 축을, 시간이 편들어 주는 형태로 옮겨 두는 것. 그러면 시간이 흐를수록 한쪽이 녹아내려도, 다른 한쪽이 그 자리를 지킨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금은 더욱 강력한 의미를 갖는다. 법정화폐는 국경을 넘기 어렵고, 다음 세대로 이전할 때 세금 문제가 복잡하며, 제도 변화에 취약하다. 반면 실물 금은 국경과 세대를 가로질러 이전이 가능하다. 물론 각국의 세법과 신고 의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실물 금을 통한 자산 이전에도 상속세, 증여세 등의 세금 문제가 수반된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러나 제도적 장벽이 존재하더라도, 실물이라는 형태 자체가 주는 이전 가능성은 다른 자산과 구별되는 속성이다.

그러니 두 번째 작별 인사는 이것이다. 시간을 적으로 두지 말라. 자산의 일부라도 시간이 편드는 곳에 두어, 세월이 당신을 위해 일하게 하라.


출처

  • 화폐의 시간적 가치 부식(인플레이션) vs 금의 물리·경제적 불변성 | 본서 6-6-2·4-4-2 | —
  • 시간을 편으로 두는 자산관(장기 보유·세대 시야) | 본서 7-3 | —
  • 1971년 금 1온스 $35, 현재 $2,000+ (닉슨 쇼크 이후 달러 구매력 부식) | 공개 경제 역사 사실 | —
  • 연 3% 인플레이션 20년 복리 계산(실질 구매력 약 55% 유지) | 일반 수학 계산 | —
  • 로마 토가 금 구매력 비교 | 역사적 일반 통설(구체 학술 출처 미검증) | —